cinema 2017. 9. 14. 18:11

감독 : 켄 로치 / 다니엘 : 데이브 존스, 케이티 : 헤일리 스콰이어

 

 

평생을 성실하게 목수로 살아가던 다니엘은 지병인 심장병이 악화되어 일을 계속 해나갈 수 없는 상황이 된다. 다니엘은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 찾아간 관공서에서 복잡하고 관료적인 절차 때문에 번번히 좌절한다.  그러던 어느 날 다니엘은 두 아이와 함께 런던에서 이주한 싱글맘 케이티를 만나 도움을 주게되고, 서로를 의지하게 되는데...

 

 

 

 

 

 

 

 

켄 로치 영화는 대개 현실을 에둘러 보여주는 법이 없다. 그가 그려낸 자본주의 영국 사회의 초상은 21세기의 빠른 속도감을 따라잡지 못하고 뒤처진 사람들의 애환을 반영하고 있다. 하지만 이 브리티시 시네마의 거장에게 더 중요해 보이는 건 현실에 대한 비관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낙관이다. <나, 다니엘 블레이크>는 시스템이 결코 포착해내지 못하는 인간적인 아름다움이 누구에게나 있다고 말하는 영화다. 다니엘은 아름다운 목공예품을 만드는 손재주 좋은 목수이고, 케이티는 낯선 사람에게도 온정을 베풀 줄 아는 따스한 마음씨를 지녔다. 그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이들 역시 제도권에 속한 공무원이 아니라 평범한 소시민들이다. 결국 해법은 사람에게 있다는 전언. 켄 로치의 영화는 언제나 가슴 밑바닥을 뜨거워지게 한다.

 

 씨네21 리뷰 / 언제나 가슴 밑바닥까지 뜨거워지게 하는 그의 영화 <나, 다니엘 블레이크> / 장영엽 2016-12-07  

 

나는 긍정론자를 불신한다. 하면 된다며 무모해 보이는 일에 일단 뛰어들고 생채기에도 아랑곳없이 전진하는 그 에너지를 보노라면 불쑥 겁이 난다. 그들은 언제나 활기 넘치고 밝은 에너지로 주변을 끌어들이지만 그 해맑음이 깨지기 쉬운 유리처럼 불안해 보일 때가 있다. 나는 타고난 비관론자다. 사물의 어두운 면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일을 시작할 땐 실패할 경우를 먼저 생각한다. 왜 그렇게 소극적이냐는 훈계와 매사를 부정적으로 본다는 핀잔 속에서 웅크린 고슴도치처럼 버텨왔다. 어쩌면 단지 방향의 문제인지도 모른다. 긍정론자가 큰 그림과 언젠가 도달할 목표를 향해 고개를 치켜든다면 비관론자는 지금 디디고 선 계단이 무너지지 않을까 바닥을 먼저 살핀다. 다만 비관론자로 살아온 적지 않은 세월 동안 하나 깨달은 게 있다면 비관론자의 긍정은 꽤 단단하다는 거다. 그들은 웬만한 실패는 실패로 여기지 않는다. 애초에 실패를 염두에 두고 있기에 불현듯 바닥에 떨어질 때도 산산조각 나는 일은 거의 없다. 성공에 대한 기대치도 상대적으로 낮다. 범사에도 감사할 줄 알고 소소한 즐거움에서 위안을 얻는 법을 익힌다. 긍정론자의 낙담은 주변을 두렵게 하지만 비관론자의 낙관은 최악의 상황에서 한줌이 버팀목이 되어준다. 지금 이 순간에도 비관론의 가치에 대해 이런 자기위안을 해본다.  

 

<나, 다니엘 블레이크>의 결말은 다소 작위적이고 드라마틱하게 보일 수도 있다. 반대로 말하자면 그래서 효과적이다. 켄 로치의 영화가 현실참여적인 힘을 발휘하는 이유이기도 하다. 그는 미학적인 완성보다 관객을 일깨우는 신파를 선택한다. 시스템을 예리하게 해부하는 이성보다 그 앞에 선 인간의 표정에 좀더 주목한다. 아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공감하는 힘이다. 켄 로치의 비극이 서사로서 소모되지 않는 까닭은 눈물을 목적으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. 그에게 웃음은 인간을 바라보는 근간이고 눈물은 설득의 도구다. 그는 미학보다 인간을 우선한다. 이 지독한 비관론자는 끝끝내 인간에게서 가능성을 발견하고 희망을 품는다. 지쳐버린 다니엘이 더이상 케이티의 집을 찾지 않을 때 케이티의 딸 데이지는 다니엘의 집을 찾아와 말한다. “우릴 도와주셨죠? 저도 돕고 싶어요.” 이보다 강력한 설득의 언어는 찾기 어렵다. 우리는 이 장면을 통해 연민과 연대가 당위의 영역에 있는 감정임을 확인할 수 있다. 서로를 위로하고 돕는 연대의 증명. 그리하여 영화는 한줌의 낙관에 기대 시스템의 불합리, 제도의 자기변명, ‘빈곤은 개인의 책임’이라는 지배층의 변명에 일갈을 날린다. 이것이야말로 켄 로치가 설득의 거리를 줄이고 관객을 영화에 참여시키는 주요하고 유효한 방식이다.

 

[스페셜] 뜨거운 분노와 희망을 품고 <나, 다니엘 블레이크>로 돌아온 켄 로치 / 글 송경원 2016-12-07  

 

 

 

 

“(지금 지구상에서) 가장 연약하고 불쌍한 사람들이 이 정부의 냉담한 처사에 의해 위협받고 있다는 건 매우 수치스러운 일입니다. 우리가 돕겠다고 했던 아이들과의 약속을 이행하는 데에 있어서 시간을 연장하는 것은 잔인한 일입니다. 그 또한 수치스러운 일이죠. 영화는 많은 걸 할 수 있습니다. 영화는 오락이 될 수 있고, 사람들을 두렵게 만들 수도 있고, 우리를 다른 세계로 데려다 줄 수도 있습니다.

 

영화는 우리를 웃게 해주는 한편,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한 어떤 이야기를 해주기도 합니다. 현실은 더 어두워지고 있다는 걸 우린 알고 있습니다. 돈과 권력, 재산과 특권을 가진 사람들, 대기업과 대기업을 대변하는 정치인들과 나머지 우리들의 싸움에서, 영화 제작자들은 자신이 어느 편인지 알고 있습니다. 때로는 이렇게 화려한 시상식도 열리지만, 우리는 사람들의 편입니다.”

 

 

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2016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등 많은 상을 받았다.

 

 

 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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